“우리는 일회용품이 아니다.” 2006년 프랑스 전역을 수놓은 시민운동의 현장에서 시민들이 외친 구호 중 하나이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이 운동은 당시 프랑스 정부가 내세운 최초고용계약(CPE)에 관한 법, 즉 ‘고용인이 26세 이하의 피고용인을 채용한 후 2년의 시..
가끔 당신의 다친 마음에서는 검은 피가 줄줄 흘러내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당신은 마음의 수혈을 할 만한 장소를 찾으려고 바깥을 두리번거렸을 거다. 그 하나의 장소로 우린 새벽시장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가면 다친 마음들이 건강한 육체에 기대고 있어서 좀처럼..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특별한 조직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뜻하지 않은 통과의례를 거치기 마련이다. 필자에게는 대학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 때 그러한 순간을 맞이한 기억이 있다. 그날 나와 한 조를 이룬 동기들은 선배들이 학내에 미리 설계한 코스들을 돌며 각각의 코스에서 주..
민주주의의 역사는 얼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조건이 이른바 자유와 평등에 달려있다면, 누구나 동등한 얼굴을 인정받고 누구나 인간다운 얼굴을 보장받는 게 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간에게 속하는 가장 본래적인 징표 중 하나가 바로 얼굴인..
우리나라에는 최초로 사람의 이름을 딴 기차역이 있다. 바로 경춘선을 잇는 김유정 역이다. 어쩌면 소설가 김유정을 모르는 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순박하면서도 애처로운 느낌이 물씬 드는 그의 소설 〈동백꽃〉, 〈봄·봄〉을 모르는 이는 아마 없으리라. 그만큼 김유정의 소설은..
봉준호 감독의 명작 〈설국열차〉(2013)에는 인류 역사의 축도라고 할 만한 열차가 등장한다. 바로 이 열차의 꼬리칸은 자본을 가지지 못해 빈곤에 허덕이는 피지배층이 거주하는 곳이고, 머리칸은 자본을 가지고 있어 풍요를 누리는 지배층이 거주하는 곳으로 설계되어 있다. ..
목전의 4월은 마치 캄캄한 터널로 향하는 입구와 같다. 그 터널로 들어서자마자 한 줄기 빛이 쏟아지는 출구로 가닿기까지는 별수가 없다. 그저 눈앞의 어둠을 응시한 채 오직 내 몸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엄연히 말해 그 소리는 불명확한 신..
인간이 공간을 만들기도 하지만, 공간이 오히려 인간을 만들기도 한다. 공간을 향한 인간의 각별한 지향성 때문이다. 그걸 우리가 토포필리아(Topophilia)라는 말로 부른 지도 오래되었다. 중국 태생의 지리학자 이-푸 투안(Yi-Fu Tuan)은 이제 이 분야의 고전..